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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박물관 이야기

푸조의 역사

1930년대에 푸조 역시 불황과 씨름했는데, 급속한 확장으로 인해 방만해진 라인업과 생산성이 떨어진 공장들이 어려움을 더했다, 1930년대 후반 5년간 회사는 202, 302, 402 모델에 디자이너 장 앙드로(Jean Andreau)의 공기 역학적 스타일을 적용하는 과감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과감한 행보가 곧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프랑스에서 자동차를 구매하는 대중은 그 자동차들의 매력에 동의하지 않았고 모두 판매가 부진했다. 프랑스가 1940년에 독일에 점령당하면서 다른 모든 프랑스 메이커와 마찬가지로 푸조의 공장도 점령당했다. 전후 생산은 1945년에 재개됐고 3년 후 푸조의 전후 최초 신 모델 203이 생산에 들어갔다. 비록 전쟁 전 모델들로부터 구동계 일부를 빌려오기는 했지만 203은 시대에 무척 걸맞아 보이는 널찍한 차체를 가졌다, 1960년에 단종되기까지 거의 70만 대가 생산됐으니 203의 성공은 장기적이었다. 203보다도 더 많이 팔린 것은 1955년에 출시된 잘생긴 403 세단이었는데 피난파리나에서 디자인을 맡았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404가 그 뒤를 따랐는데 45도 기울어진 403 엔진의 1,6,18 시시 버전을 사용했다. 404는 1963년부터 1968년 동아프리카 사파리 랠리에서 5회 중 4회를 우승함으로써 그 성능을 입증했다. 더 많은 모델들이 뒤를 이었고 주로 피난과 리나가 디자인을 맡았다. 그중에느 1968년에 출시된 504도 있었다. 이 차는 푸조의 가장 눈에 띄는 차 중 하나였다. 푸조는 나는 대중이 자동차를 평가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을 닦았다며 그의 업적을 자신감이 내비쳤다. 푸조의 역사적인 차종중 하나인 에클립스 데카 포타블은 가족용 자동차인 푸조 402의 컨버터블 모델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동으로 접히는 구조의 형태로 금속제의 루프를 갖추었다. 또한 아리 바타넨과 동료 운전자인 해리먼이 포즈 205 터보 16을 타고 스웨덴 랠리의 우승을 향해갔다. 이들의 성공은 푸조가 챔피언쉽의 컨스 트럭터 부문에서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푸조는 1810년 푸조 가문이 금속제조업을 시작하면서 시작돼 얻고 1923년 연간 생산량이 최초로 1만 대를 넘어섰다. 1965년에는 푸조 최초의 전륜 구동차인 204를 출시하여, 2년 후인 196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용량이 적은 디젤 엔진을 내놓았다. 1984년에는 아리바 타넨이 랜리 핀란드를 205 터보 16으로 우승하여 푸조 월드 랠리 챔피업십에서 거든 최초의 승리를 이룬다. 1987년에는 푸조가 역사상 처음으로 4 연속 다카르 랠리 우승을 기록하기도 한다. 푸조는 광고에서도 톡톡한 효과를 많이 보앗는데 1918년에 화가 르네뱅상이 만든 포스터가 푸조의 경주용 자동차뒈에 생긴 연기를 프랑스 국기의 색을 장식한 이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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