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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박물관

푸조는 지금 있는 메어키중에 가장 오래된 자동차 메이커중에 하나로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기계 제조 일을 해온 푸조는 1000년도 넘게 자동차를 만들어왔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대들보인 푸조는 경쟁차들을 흡수해서 최대 자동차 메이커중에 하나로 성장했다.

푸조의 성장기

 푸조의 창업자인 아르망푸조 (Armand Peugeot)는 1849년 프랑스 동부 에리몽쿠르에서 태어났다. 1865년에 가업에 발을 들여 다양한 가재도구 등을 만드는 금속 가공 일을 하던 아르망 푸조는 1882년 회사가 자전거 제조업으로 진출하는데 주된 역할을 했다. 그는 '말 없는 마차;를 개발한다는 전망에 이르렀고 1880년대 말에 증기 기관을 달 생각으로 바퀴가 큰 차대를 만들었다. 그 프로젝트는 고블리 에프 다임러와 에밀 르 바소를 만난 후에  페기 됐다. 두 사람은 아르망을 설득해 다임러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자동차를 제작하게 했다. 푸조의 자동차들은 다임러의 라이선스를 받아 파나르에 르 바소에서 독립됐으며 휘발유를 연료료 한 내연 기관으로 작동됐다. 1891년에 최초의 차 5대가 완성됐다. 그런데 디자인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 2년 후에는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돼 24대의 자동차가 조립됐다. 모터스포츠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현장에 있던 푸조는 1894년 초기 파리-루엥 랠리에 참가했다. 1895년에 푸조는 슬라이딩 기어 변속기와 더불어 고무 덩어리로 만들어진 타이어 대신, 내부에 공기를 넣은 타이어를 채택한 최초의 브랜드가 됐다. 푸조는 다임러와 결별하고 1896년부터 자체적인 엔진을 설계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아르망 푸조는 기업과 결별하고 오댕쿠르에 자기 회사를 자렸다. 그 결과 1900년에는 매년 500대를 생산하는 메이커가 됐다. 그 3년 후에는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전체 자동차의 절반을 제작하게 됐다.  그러나 아르망 푸조가 차린 회사의 위상이 성장하면서 그의 개인적 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10년 푸조는 아직 가업에 몸 담고 있던 사촌 외젠 푸조(Eugene Peugeot)와 손을 잡았다. 오댕쿠르에 있는 푸조의 회사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화됐고, 1913년 에토레 부가티가 디자인한 조그만 6CV BP-1을 선보였다. 베베(Bebe)라는 별명이 붙은 BP-1은 인기가 있어서 1916년에 단종되기 전까지 3,000대 이상 생산됐다. 베베보다 다소 큰 것은 푸조의 7.6리터 레이서로, 1912년 프랑스 그랑프리와 이듬해 인디애나폴리스 500 아너스 경주에서 우승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시기에 푸조의 제조 설비는 대체로 군비와 군용 차량의 생산에 사용됐다. 전쟁 덕분에 재정 상태가 개선된 회사는 1920년대에 엄청난 확장을 꾀할 수 있었고 1927년대에는 발랑 제(Ballanger)와 드디옹(De Dion)을 인수했다.1년 후에는 푸조201을 출시했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팔리던 것 중 가장 싼 후륜 구동 자동차였다. 201은 또한 푸조 최초로 번호 이름을 체계 가운데에 0번이 도입된 모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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